한국 진보 정당의 창설 및 의회 진출 가능성에 대한 연구 다운
한국 진보 정당의 창설 및 의회 진출 가능성에 대한 연구 다운
한국 진보 정당의 창설 및 의회 진출 가능성에 대한 연구
먼저 한국에서의 그간의 진보정당 운동을 간략하게 살펴보고, 진보정당이 앞으로 얼마나 성장-발전할 수 있을 것인가를 무엇보다 진보정당의 의회진출 가능성 문제를 중심으로 분석했습니다.
1. 들어가면서
2. 과거의 진보정당운동
2.1. 이승만 정권 하에서의 진보당 운동
2.2. 1960년 4월혁명 이후의 혁신정당 운동
2.3. 1987년 6월 민주화를 위한 범국민적 투쟁 이후의 진보정당 운동
3. 현시기의 진보정당건설 운동
4. 진보정당의 의회진출 가능성
5. 결론출마한 지역에서의 평균 지지율도 4.3%에 불과하였다. 이어 90년 4월 진보진영의 범전선조직이었던 전국민족민주연합의 일부세력은 민중의 당, 한겨레민주당을 추진하던 세력들과 함께 ‘민중의 정당 건설을 위한 민주연합추진위원회’를 결성하였고 이 가운데 야당과 통합하자는 파가 이탈한 가운데 90년 11월 ‘민중당’을 창당했는데, 창당당시 51개 지구당에 2천여 명의 당원을 지녔던 민중당은 지방선거에 42명을 출마시켰으나, 단 1명의 당선자를 냈을 뿐이었다. 출마지역 득표율은 13.27%나 되었으나, 총득표율은 0.8%에 불과하였다. 한편 구인민노련세력이 주축이 되어 91년 12월 ‘한국노동당창당준비위원회’가 건설되었는데, 총 29개 지부 3,520명의 발기인 대부분이 노동운동의 주체들이었고 발족 당시 당원의 수는 4,000명이었다. 이후 한노당은 92년 2월 민중당으로 통합했는데, 한노당과 통합한 민중당은 92년 4월의 14대 총선에 51명을 출마시켰으나 출마지역 평균 득표율이 6.5%로 낮아지는 가운데 1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하여 해산 당하였다. 이후 구민중당 주도세력은 합법적 진보정당 건설을 포기하고 대부분 보수정당으로 자신의 소속을 옮겼다. 이어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지지한 세력들은 92년의 14대 대선에서 백기완후보를 출마시켜 민중후보운동을 전개했지만, 이 운동을 통해 백기완후보는 총투표자의 1.0%에 해당하는 23만 8천여 표로 획득하는 데에 그쳤다.
3. 현시기의 진보정당건설 운동
현시기의 진보정당건설운동은 진보세력이 97년의 15대 대선에서 ‘국민승리21’운동을 전개한 것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런데 국민승리21은 애초에는 15대 대선을 앞두고 민주노총과 전국연합의 상층간부 및 진보정치연합이 주축이 되어 조직한 (진보세력 주류파인) 진보세력내 우파의 15대 대선대책기구로서 출발했다.
자료출처 : http://www.ALLReport.co.kr/search/Detail.asp?pk=16088438&sid=sanghyun7776&key=
[문서정보]
문서분량 : 10 Page
파일종류 : HWP 파일
자료제목 : 한국 진보 정당의 창설 및 의회 진출 가능성에 대한 연구
파일이름 : 한국 진보 정당의 창설 및 의회 진출 가능성에 대한 연구.hwp
키워드 : 한국,진보,정당의,창설,및,의회,진출,가능성에,대한,연구
자료No(pk) : 16088438
한국 진보 정당의 창설 및 의회 진출 가능성에 대한 연구
먼저 한국에서의 그간의 진보정당 운동을 간략하게 살펴보고, 진보정당이 앞으로 얼마나 성장-발전할 수 있을 것인가를 무엇보다 진보정당의 의회진출 가능성 문제를 중심으로 분석했습니다.
1. 들어가면서
2. 과거의 진보정당운동
2.1. 이승만 정권 하에서의 진보당 운동
2.2. 1960년 4월혁명 이후의 혁신정당 운동
2.3. 1987년 6월 민주화를 위한 범국민적 투쟁 이후의 진보정당 운동
3. 현시기의 진보정당건설 운동
4. 진보정당의 의회진출 가능성
5. 결론출마한 지역에서의 평균 지지율도 4.3%에 불과하였다. 이어 90년 4월 진보진영의 범전선조직이었던 전국민족민주연합의 일부세력은 민중의 당, 한겨레민주당을 추진하던 세력들과 함께 ‘민중의 정당 건설을 위한 민주연합추진위원회’를 결성하였고 이 가운데 야당과 통합하자는 파가 이탈한 가운데 90년 11월 ‘민중당’을 창당했는데, 창당당시 51개 지구당에 2천여 명의 당원을 지녔던 민중당은 지방선거에 42명을 출마시켰으나, 단 1명의 당선자를 냈을 뿐이었다. 출마지역 득표율은 13.27%나 되었으나, 총득표율은 0.8%에 불과하였다. 한편 구인민노련세력이 주축이 되어 91년 12월 ‘한국노동당창당준비위원회’가 건설되었는데, 총 29개 지부 3,520명의 발기인 대부분이 노동운동의 주체들이었고 발족 당시 당원의 수는 4,000명이었다. 이후 한노당은 92년 2월 민중당으로 통합했는데, 한노당과 통합한 민중당은 92년 4월의 14대 총선에 51명을 출마시켰으나 출마지역 평균 득표율이 6.5%로 낮아지는 가운데 1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하여 해산 당하였다. 이후 구민중당 주도세력은 합법적 진보정당 건설을 포기하고 대부분 보수정당으로 자신의 소속을 옮겼다. 이어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지지한 세력들은 92년의 14대 대선에서 백기완후보를 출마시켜 민중후보운동을 전개했지만, 이 운동을 통해 백기완후보는 총투표자의 1.0%에 해당하는 23만 8천여 표로 획득하는 데에 그쳤다.
3. 현시기의 진보정당건설 운동
현시기의 진보정당건설운동은 진보세력이 97년의 15대 대선에서 ‘국민승리21’운동을 전개한 것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런데 국민승리21은 애초에는 15대 대선을 앞두고 민주노총과 전국연합의 상층간부 및 진보정치연합이 주축이 되어 조직한 (진보세력 주류파인) 진보세력내 우파의 15대 대선대책기구로서 출발했다.
자료출처 : http://www.ALLReport.co.kr/search/Detail.asp?pk=16088438&sid=sanghyun7776&key=
[문서정보]
문서분량 : 10 Page
파일종류 : HWP 파일
자료제목 : 한국 진보 정당의 창설 및 의회 진출 가능성에 대한 연구
파일이름 : 한국 진보 정당의 창설 및 의회 진출 가능성에 대한 연구.hwp
키워드 : 한국,진보,정당의,창설,및,의회,진출,가능성에,대한,연구
자료No(pk) : 16088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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